끄적끄적 넋두리 근황
공부하기 싫어서 이러고 있다. 난 집중력이 오래 가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씩 나눠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인데 맨날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에 몰아서 하려니까 너무 힘들다.
하.... 그냥 요즘은 나 자신이 너무 불만족스럽다. 눈앞에 있는 거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나 자신이 진짜 꼴보기가 싫을 정도다. 아무 것도 가진 거 없는 건 내가 제일 잘 알면서, 노력마저 안 하면 어쩌자는 거야. 하루에 6시간 공부하는 거 그게 싫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쉴까 궁리나 하고 앉았다.
솔직히, 요새는 수능 공부하던 때가 오히려 그립다. 난 살면서 공부가 재미 없다는 생각을 거의 한 적 없는데(단지 공부보다 재밌는 게 세상에는 너무 많을 뿐.) 요즘은 공부가 이렇게까지 싫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싫다. 내가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이유가
1. 아무런 성취감 없는, 형식적인 공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들, 하나같이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학점 관리? 중요한 건 알겠다. 근데 어차피 몇 주 후면 다 까먹을 걸 대체 왜 밤까지 새워가며 외워야 하는 건지?? 1학년이니까 교양 수업이 많아서 그런 건 그럴 수 있다 치는데 전공 교수님들마저도 강의력이 개같고 우리 학교 공대 안 밀어주는 게 너무 너무 실감나서 현타가 씨게 왔다. 수능 공부는 내가 직접 머리를 써서 깊게 파고 들어야 실력이 늘어서 내가 스스로 참여하고 고민하는 능동적인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어려운 면도 있었지만 난 그게 정말 나한테 의미있고 재밌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내가 하는 공부들은 다 주어진 걸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한 수동적이기 짝이 없는 공부들이라 너어무 재미가 없다.
학회 공부도 요샌 너무 동기 부여가 안 됐다. 솔직히 리눅스를 뭘 위해 배우는지 이런 건 하나도 모른 채로 맨날 피피티 내용만 정리해서 올리고 그 다음주면 다 까먹고.... 이거의 반복이라 너무 의미 없게 느껴졌다. 그냥 기한 안에 과제를 내기 위해서 공부한 흉내만 냈을 뿐, 나한테 뭔가 지식이 쌓이거나 도움이 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던 거다. 그래서 진지하게 학회 활동을 그만둘까 생각하고 과제를 안 했는데 막상 그만두려니 도망치는 거 같아서 못하겠더라ㅋㅋ;;... 그래서 종강한 지금이라도 밀린 과제들 조금씩 다시 하고 있는데 역시나 그냥 힘만 빠진다. 짜증난다. 나도 조금 시간을 두고 여유있게 소화시키며 공부하고 싶은데, 학회 과제는 매주 계속 있고 그 진도를 따라가기에만 급급해서 결과적으로 머리에 남는 게 없다. 그런데 막상 학회를 그만두자니 또 내가 이것마저도 안 할 것 같고.... 안 그래도 떠먹여주는 게 하나도 없는 게 우리 학교 공대인데 내가 공부를 아예 안 해버리면 완전 뒤처질까봐 무서워서 걍 이도 저도 못하고 붙잡고 있다.
지금까지는 하고 나서 뿌듯한 느낌, 아는 게 늘어가는 느낌, 그리고 성적이 오르는 맛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그런 자극이 전혀 없이 의자에만 묶여 있으니까 답답하고 하기가 싫다. 난 원래 나 스스로 해야 하는 이유가 납득되지 않으면 죽어도 안 하는 사람인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납득 안되는 일들 뿐인데도 도저히 안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마지못해 하고 있다.
2. 내 맘대로 할 수가 없음
수능 공부는 모두가 똑같은 날에 똑같은 시험을 보는 표준화 시험이긴 하지만, 공부 방식이나 강사나 책이나 이런 건 내 맘대로 선택해서 내가 공부하고 싶은 대로 계획 짜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근데 학점 관리라는 게 그냥 고등학교 때 내신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 보니 다같이 똑같은 교재로, 똑같은 내용 달달 외워서 교수님 입맛에 맞추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너무 짜증났다. 남들 하는 대로, 정해진 대로 하는 게 난 왜 이렇게 싫지. 물론 내가 듣고 싶은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는 있었지만, 뭔 수업을 들어도 그 평가 방식은 똑같았다. 그냥 정해진 거 외워서, 교수님 입맛에 맞게 답안 제출하기.
3.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공부를 못함
나한테 집은 그냥 뒹굴거리다가 처자는 공간인데 집에서 공부를 해야 하니까 어떻게 해도 효율적으로 안 된다. 원래 대학 가면 학교에서 수업 듣고 저녁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도서관은 커녕 학교도 가질 못하고 있다. 자꾸만 게을러지는 나 자신을 견딜 수가 없는데, 막상 공부하려고 하면 잘 되지도 않아서 짜증만 난다. 밖에서 가족들은 하루종일 떠들고, 낮은 층이라 밖에 놀이터에서 초딩들 소리지르는 소리도 다 들리고...... 이러니까 의욕만 계속 꺾인다. 그나마 캠스터디 때문에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늉이라도 하고 있지... 이것도 아니었으면 진짜 걍 하루종일 폐인처럼 살고 있을 거 같다. 솔직히 요샌 이렇게 강제로 공부하는 것마저도 너무 힘들고 감당이 안 돼서 다 던지고 싶다.
4. 목표 상실
사실 지금까지는 항상 내가 해야만 하는 몫이 나에게 주어졌었고, 그 주어진 걸 해내기만 하면 됐었는데 이제 나 스스로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때가 되니까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전공이 안 맞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렇다고 이게 완전 내 길이다! 해서 나 스스로 뭔가 막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고. 사실 아직까지 뭐 배운 것도 없어서 뭐라 말을 못하겠다. 그리고 cs가 너무 분야가 여러가지라 무엇에 초점을 맞춰서 공부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사실 이런 건 내가 직접 경험해봐야 아는 건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 사실 지금 해야 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이것저것 시도해볼 여유가 없다. 그 해야 하는 것들은 사실 내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닌데, 막상 정말 내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해서 그것들을 내려놓으면 그냥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지나갈까봐 무섭다. 무언가를 위해서 내 노력을 최대한 쏟아붓고 싶은데, 어디에 그걸 쏟아 부어야 할지를 도저히 모르겠다.
난 솔직히 캠퍼스 낭만 어쩌구가 이미 오래전에 다 깨져서 대학 가도 전혀 놀 생각이 없었고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대학을 왔는데, 드디어 공부다운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대학에서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질낮은 공부를 하고 있어서 너무 회의감이 든다. 작년의 반의 반도 공부 안 하고 있으면서 스트레스는 몇 배로 더 받고 있다. 이러려고 삼수까지 해서 대학을 왔나? 고작 이걸 위해서? 하.... 그냥 답답하다.
그리고 요샌 내가 지쳤다는 게 너무 느껴진다. 예전처럼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게 너무 힘들다. 그동안은 그냥 내가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아득바득 해왔는데 뭐 하나 똑바로 이뤄낸 게 없으니까 허무하기만 하고 이제는 앞으로 뭘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무의식적인 생각이 먼저 든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 거, 열심히 달려야 할 때인 거 나도 잘 아는데 마음만 조급해지고 정작 하는 건 없다. 이런 나 자신이 진짜 너무 너무 싫다. 난 어릴 때부터 모두가 인정하는 야망충이어서 너무 잘하고 싶고 어떻게든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엄청 강한 사람이었는데, 어쩌면 난 그걸 빼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인데 살면서 그런 게 점점 무뎌지는 게 보여서 속상하다. adhd 인간인 내가 그 야망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온 건데, 앞으로는 어떡하지? 앞으로 내가 다시는 예전처럼 노력하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든다.